변하는 명절 음식, 시장에서 만난 오늘의 명절 풍경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사람들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고, 상인들은 전이며 나물이며 떡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오고, 갓 부쳐낸 전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가 묵직했을 텐데,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명절 음식도 먹을 만큼 조금씩, 여러 가지를 골라 사는 모습 이 자연스러워졌다. 명절이면 온 집안이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시절 어릴 적 명절을 떠올리면 음식 냄새부터 생각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장을 보셨다. 쌀이며 고기며 생선이며 과일을 사고, 커다란 장바구니에는 이것저것 담을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시면 본격적인 명절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 큰 대야에는 불린 고사리와 시금치, 도라지가 담겨 있었고, 부엌 한쪽에는 송편이나 떡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전 부치는 날 이었다. 동태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동그랑땡을 빚고, 호박과 두부도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직 손대지 마라. 차례상에 올릴 거다."라고 하셨지만, 아이들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잘 익은 전 하나를 슬쩍 집어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전 한 조각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음식 자체의 맛보다도 명절이라는 특별한 날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 가보니 달라진 명절 풍경 요즘 시장에 가보면 명절 음식이 아주 다양하다.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호박전, 산적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시인 윤동주가 우리에게 남긴 위로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아니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있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그의 시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되는 그의 <서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행간에 숨겨진 시인의 처절한 자기 성찰과 따뜻한 그리움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그 투명한 영혼의 기록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투명한 영혼'

먼저 그의 대표작, **<서시>**를 다시 한번 가슴으로 읽어봅니다.

서시(序詩)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을 관통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사실 그는 남을 해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는 순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 같은 사소한 흔들림에도 괴로워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삶의 투명성' 때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총을 들고 싸우지 못하고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는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그는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거울 앞에 서서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했습니다.


2. 외딴 우물 속에서 마주한 '자화상'

그의 시 **<자화상>**에는 이런 투명한 성찰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홀로 외딴 우물을 찾아가 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죠.

우물 속의 자신을 보며 그는 미움과 가엾음, 그리고 그리움을 반복해서 느낍니다. 

부끄러운 현실의 나를 미워하며 등을 돌려 떠나다가도, 다시 가엾은 마음이 들어 우물을 들여다보는 그 마음. 

결국 그는 우물 속에서 '추억처럼' 존재하는 순수한 본질의 나를 발견하고 자신과 화해합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했던 그의 고독한 수행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3. 별 하나에 담긴 이름, '어머니'와 '고향'

윤동주가 그 지독한 부끄러움과 어둠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고향과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아명은 '해환(海煥)', 동생들은 '달환', '별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북간도 명동촌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란 그에게 별은 곧 가족이었고 고향이었습니다.

**<별 헤는 밤>**에서 그는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담아 부르다가, 마지막에 가장 간절하게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니,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단순히 나를 낳아준 분을 넘어, **상처 입은 영혼이 돌아갈 유일한 안식처이자 모국(조국)**이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치욕 속에서도 그는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2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던 순간, 그가 내뱉은 마지막 외마디 비명은 아마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의 하늘과 어머니를 향한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4. 기적처럼 우리에게 돌아온 그의 시

우리가 지금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한 친구의 고결한 우정 덕분이었습니다. 

윤동주가 유학 가기 전 건넸던 자필 시집을, 그의 후배 정병욱이 어머니께 부탁해 항아리에 담아 마루 밑에 숨겨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투명한 마음은 항아리 속에서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영혼을 비추는 우물을 들여다보았나요?"


🖋️ 글을 마치며

아기가 엄마와 눈을 맞추며 세상에 없는 평온함을 느끼듯, 윤동주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가 세상과 하늘 앞에 눈을 맞추는 간절한 기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바람이 불어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던 그의 다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윤동주 시인의 생애와 시를 기리며  작성되었습니다"